인간 배아가 여덟 개의 세포로 나뉜 무렵, 어떤 배아는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인간 배아 연구에는 기증자의 동의와 엄격한 윤리 심사가 필요하고,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배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제 배아를 조사하는 한편, 줄기세포로 초기 배아의 유전자 활동을 일부 재현한 세포모델도 활용한다.
2026년 《사이언스》에서 Yangquan Xiang 등 공동연구진은 실제 인간 배아의 발달정지 사례를 분석하다가 뜻밖의 단서를 발견했다. 8세포기에서 발달이 멈춘 배아에서는, 발달을 이어간 배아와 비교했을 때 아주 오래전 바이러스가 인간의 조상에게 남긴 DNA 서열의 활동이 낮았던 것이다.
인간의 유전체에는 과거 레트로바이러스 감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부분은 더 이상 온전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랫동안 그 흔적의 상당수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유전적 잔재로 여겨졌다. 그런데 연구진이 주목한 MLT2A1이라는 바이러스 유래 반복서열은 단순히 남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연구진이 MLT2A1에서 만들어지는 RNA를 줄이자 배아 발달에 문제가 생기고 여러 유전자의 활성화도 약해졌다. RNA는 DNA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분자로, 일부는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한다. 더 자세히 조사하자 유전체 여러 곳에 흩어진 MLT2A1 서열들이 서로 다른 RNA를 만들고, 이 RNA들이 함께 작용해 배아의 유전자 활동을 강화하는 구조가 드러났다.1
이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 배아가 발달 초기에 겪는 전환 때문이다. 수정 직후 배아는 상당 부분 난자가 미리 남겨둔 RNA와 단백질에 의존한다. 그러다 자신의 DNA를 읽는 비중을 점차 높이고, 8세포기 무렵에는 대규모 유전자 활성화가 일어난다. 이를 배아 유전체 활성화(ZGA)라고 한다.2
한때 바이러스의 일부였던 유전물질이, 인간 배아가 자신의 유전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전체에 남은 바이러스의 흔적
레트로바이러스는 감염한 세포의 DNA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삽입한다. 이런 일이 먼 조상의 생식세포에서 일어나 후손에게 전달되면,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DNA도 유전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에는 돌연변이가 쌓인다. 온전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능력을 잃더라도 그 서열은 유전체에 남을 수 있다. 이렇게 유전되는 바이러스 유래 서열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RV)라고 한다.
인간이 이런 유전물질을 자기 기능에 이용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반의 싱시틴(syncytin)이다.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에서 유래한 싱시틴은 태반세포들이 서로 융합하는 데 관여한다.3
초기 인간 배아에서 바이러스 유래 서열이 활발히 발현된다는 사실도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그러나 특정 서열의 활동이 발달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관찰만으로 그 서열이 실제 발달에 기여하는지는 알 수 없다.
MLT2A1에서 만들어지는 RNA를 줄이는 실험이 중요했던 이유다. 연구진은 실제 인간 배아와, 인간 8세포기의 유전자 활동을 일부 재현한 배양 세포모델에서 MLT2A1의 기능을 시험했다. RNA를 줄인 뒤에는 여러 유전자의 활성화가 약해졌으며, 배아 발달에도 문제가 나타났다.14
따라서 MLT2A1은 발달이 멈췄을 때 함께 활동이 줄어든 표지에 그치지 않았다. 연구진이 시험한 조건에서 초기 배아의 유전자 활성화를 돕는 기능을 했다.
그런데 MLT2A1이 작동하는 방식은 유전자 하나의 활동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흩어진 서열들이 하나의 연결망을 만들었다
MLT2A1 계열의 서열은 유전체 여러 위치에 흩어져 있다. 이 서열들의 주변에 놓인 DNA는 위치마다 다르다.
연구진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RNA를 분석하자 흥미로운 특징이 나타났다. MLT2A1에서 시작한 RNA가 그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뒤쪽의 다른 서열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앞부분은 비슷하지만 뒷부분은 제각각인 RNA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서열에서 유래한 부분이 하나로 연결된 RNA를 키메라 RNA라고 한다.
연구진은 이 구조가 실제 기능과 연결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RNA마다 서로 다른 뒷부분은 각 RNA가 작용할 수 있는 유전체 영역을 넓혔다. 반면 공통된 MLT2A1 부분은 RNA와 결합하는 단백질인 HNRNPU와 상호작용했다. HNRNPU는 DNA의 정보를 RNA로 옮겨 적는 효소인 RNA 중합효소 II를 불러오는 데 관여했다.1
서로 다른 부분은 활동 범위를 넓히고, 공통된 부분은 유전자 전사에 필요한 장치를 모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 RNA들은 배아의 여러 유전자뿐 아니라 MLT2A1 계열 자체의 발현도 강화했다. 유전체의 여러 위치에서 만들어진 RNA들이 함께 작용하면서 더 넓은 유전자 활성화를 돕는 구조였다.
이번 연구의 새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서열 하나가 새로운 기능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넘어, 여러 위치에 흩어진 서열과 그 RNA들의 연결관계가 하나의 조절망으로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 활동은 누가, 언제 시작할까
그렇다면 MLT2A1은 어떻게 활동을 시작할까.
2025년 《네이처 제네틱스》에 발표된 연구에서 Qiuyan Wang 등 공동연구진은 난자에서 배아로 전달되는 전사인자 OTX2가 인간 초기 유전체 활성화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사인자는 DNA의 특정 영역에 결합해 유전자 활동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OTX2는 인간 배아의 4세포기에서 여러 유전자와 함께 MLT2A1의 활성화도 촉진했다. 따라서 초기 배아의 유전자 활동은 MLT2A1 하나가 독립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배아가 물려받은 조절인자들과 맞물려 이루어진다.5
이 결과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요소가 유전자 활성화에 관여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요소가 먼저 활동하고 무엇이 뒤따르는지도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 않을까.
2026년 10월 《셀 리포트》에 발표된 연구에서 An Huang 등 공동연구진은 이와 관련된 시간순서를 추적했다. 연구진이 이용한 것은 실제 인간 배아가 아니라, 인간 줄기세포를 배양해 초기 배아와 비슷한 유전자 활동을 보이도록 만든 8세포기 유사세포(8CLC)였다.
이 세포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는 유전자 활동을 조절하는 단백질인 TPRX1의 발현이 먼저 나타났다. 이후 바이러스 유래 반복서열인 HERVL도 활성화된 세포들이 등장했다. HERVL의 활동을 억제하자 세포가 초기 배아와 비슷한 상태로 바뀌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6
이 연구는 MLT2A1의 작동방식을 다시 확인한 실험은 아니다. 다만 초기 배아를 모사한 세포모델에서 바이러스 유래 서열의 활성화가 일정한 순서를 따라 나타나며, 그 활동이 세포 상태의 변화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이런 세포모델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도 개발됐다. 실제 인간 배아를 조작하지 않고도 배양된 세포에서 초기 유전자 활성화의 순서와 조절관계를 조사할 수 있는 수단이 발전하고 있다.7

발달이 멈춘 배아에서는 무엇이 잘못됐을까
이 연구들이 난임이나 체외수정 치료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결과를 낸 것은 아니다.
발달이 멈춘 인간 배아에서 MLT2A1의 활동이 낮았다는 관찰과, 이를 인위적으로 줄였을 때 발달에 문제가 생겼다는 실험은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발달정지 배아의 분석에는 전핵 상태가 서로 다른 시료들이 포함됐으며, 일부 조작 실험에는 정상 수정배아와 달리 전핵이 세 개 관찰되는 3PN 연구용 배아가 사용됐다. 8세포기 유사세포에서 얻은 결과 역시 실제 배아의 발달능력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4
같은 단계에서 발달이 멈췄다고 해서 그 안에서 일어난 분자적 변화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어떤 배아에서는 유전자 활동을 시작하는 조절인자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다른 배아에서는 여러 RNA가 함께 작동하는 과정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실제로 발달정지에 관여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가 확인한 것은 MLT2A1에서 만들어지는 RNA의 기능이지, 발달정지 배아들을 원인별로 분류하는 방법이 아니다.
같은 발달정지라는 결과 뒤에 서로 다른 원인이 숨어 있는지, 이제 이를 살펴볼 단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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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6년 핵심 연구. Xiang, Y. et al., “Endogenous retroviruses synthesize heterologous chimeric RNAs to reinforce human early embryo development,” Science 391, eadv5257 (2026). DOI: 10.1126/science.adv5257. Yangquan Xiang은 공동제1저자 중 한 명이다. 연구진은 8세포기에서 발달이 멈춘 인간 배아에서 MLT2A1 발현 저하를 관찰하고, 기능 억제 실험과 분자 분석을 통해 키메라 RNA·HNRNPU·RNA 중합효소 II가 관여하는 전사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발현 저하의 관찰과 기능 조작의 결과는 서로 다른 증거다. MLT2A1은 ERVL 계열의 바이러스 유래 긴 말단 반복서열(LTR)에 속한다. 연구 원자료는 NCBI BioProject PRJNA1116059 및 GEO GSE268270에 등록돼 있다.
2. 배아 유전체 활성화. 수정 직후 인간 배아는 난자에서 전달된 RNA와 단백질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이후 배아 자신의 유전자 전사가 점차 늘어나며, 8세포기 무렵 대규모 배아 유전체 활성화가 두드러진다. 이 변화는 모든 유전자가 한꺼번에 켜지는 단일 사건이 아니다. Xiang et al., Science (2026)
3. 바이러스 유래 유전물질의 선행 연구. Mi, S. et al., “Syncytin is a captive retroviral envelope protein involved in human placental morphogenesis,” Nature 403, 785–789 (2000). DOI: 10.1038/35001608. Göke, J. et al., “Dynamic transcription of distinct classes of endogenous retroviral elements marks specific populations of early human embryonic cells,” Cell Stem Cell 16, 135–141 (2015). DOI: 10.1016/j.stem.2015.01.005. 바이러스 유래 유전물질의 기능적 활용과 인간 초기 배아의 단계별 반복서열 발현은 2026년 이전부터 연구됐다. 다만 발현이 관찰됐다는 사실만으로 발달에 필요한 기능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4. 연구윤리와 실험대상의 구분. 인간 배아 연구의 기증 동의와 윤리적 감독에 관한 국제적 기준은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의 Guidelines for Stem Cell Research and Clinical Translation를 참고할 수 있다. 2025년 개정에서는 줄기세포 기반 배아모델의 감독 기준도 다뤘다. 다만 8CLC처럼 특정 유전자 활동을 재현하는 세포모델을 완전한 배아와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Xiang 공동연구진은 실제 인간 배아와 8세포기 유사세포를 사용했다. 발달정지 배아의 전사체 자료인 GEO GSE268186에는 2PN·3PN·0PN으로 구분되는 표본이 등록돼 있다. 2PN은 전핵이 두 개, 3PN은 세 개 관찰되는 상태이며, 0PN은 관찰 시점에 전핵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정상 2PN 배아와의 비교에는 기존에 공개된 전사체 자료(SRP163205)를 재처리해 사용했다. MLT2A1 억제 후 유전자 발현 분석은 GSE268184에 등록돼 있다. HNRNPU 억제 실험인 GSE301882는 3PN 연구용 배아에 siRNA를 주입해 수행했다. 서로 다른 수정·배양·조작 조건의 자료를 모두 정상 수정배아의 발달과 동일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8세포기 유사세포의 실험적 성격은 Taubenschmid-Stowers, J. et al., “8C-like cells capture the human zygotic genome activation program in vitro,” Cell Stem Cell 29, 449–459.e6 (2022), DOI: 10.1016/j.stem.2022.01.014 참고.
5. 숙주 유래 조절인자 OTX2. Wang, Q. et al., “Maternal factor OTX2 regulates human embryonic genome activation and early development,” Nature Genetics 57, 2772–2784 (2025). DOI: 10.1038/s41588-025-02350-8. Qiuyan Wang은 공동제1저자다. OTX2는 인간 배아의 4세포기에서 TPRX1·TPRX2와 HERVL-int·MLT2A1의 활성화를 촉진했다. OTX2와 TPRXL을 함께 억제하면 8세포기 유전자 활성화와 염색질 접근성의 결함이 더 커졌다. 이 결과는 OTX2의 조절 기능을 뒷받침하지만, TPRX1이 인간 배아에서 MLT2A1을 직접 활성화한다는 경로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6. 8세포기 유사세포의 활성화 순서. Huang, A. et al., “Sequential TPRX1 and HERVL activation delineates a progression toward the totipotent-like state,” Cell Reports 45, 118163 (2026). DOI: 10.1016/j.celrep.2026.118163. An Huang 등 공동연구진은 서로 다른 형광 신호로 TPRX1과 HERVL의 활동을 구별하고, 시간에 따른 세포 상태의 변화를 추적했다. CRISPR 간섭 및 RNA를 표적으로 한 조작 실험은 HERVL 서열과 유래 RNA가 이 전환 과정에 기능적으로 기여한다는 결과를 뒷받침한다. 실험대상은 배양 세포모델이며, 개별 HERVL 위치의 작동방식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7. 새로운 세포모델 유도법. Kong, X. et al., “Chemical reprogramming of human pluripotent stem cells into 8-cell-like states,” Cell Research (2026). DOI: 10.1038/s41422-026-01314-9. Xi Kong 등 공동연구진은 일곱 종류의 화학물질과 LIF를 사용하는 7CL 조건으로 약 6일 만에 8세포기 유사세포를 유도했다. 보고된 TPRX1 양성 세포 비율은 약 51.5%였으나 이는 실제 인간 배아를 만든 비율이나 정상 발달 성공률이 아니다. 이 연구는 세포모델 제작과 검증 방법의 진전으로 취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