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물을 졸여 식히면 투명하고 단단한 사탕을 만들 수도 있고, 설탕 결정을 키울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만들어지는지는 수분 함량과 냉각 속도, 결정이 생겨나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둘 다 설탕이 굳은 결과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 사탕 속 분자들은 불규칙하게 배열된 채 움직임이 제한되고, 설탕 결정 속 분자들은 규칙적인 구조를 이룬다.1
두 과정은 서로 경쟁한다. 분자들이 결정을 키우기도 전에 유리처럼 굳어버리면 결정이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결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주변의 설탕 분자들을 받아들이면서 자란다.
단백질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현미경에서는 한층 뜻밖의 장면이 관찰됐다.
가느다란 단백질 섬유가 자라는 동안 주변의 둥근 단백질 방울들이 점점 작아졌다. 섬유와 방울은 같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길어지고, 다른 하나는 줄어들었다. 마치 섬유가 주변 방울의 재료를 가져다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2026년 10월 20일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발표된 연구는 이 현상을 통해 단백질이 굳는 두 경로의 경쟁을 설명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리루 펑(Liru Feng)과 루이즈 제이워스(Louise Jawerth)가 실험을 기획하고 이끌었으며,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학연구소의 료타 다카키(Ryota Takaki)와 프랑크 율리허(Frank Jülicher) 등이 이론 모델을 개발한 공동연구다.2
섬유가 자라면 방울이 줄어든다
연구 대상은 FUS라는 단백질이다. 세포 안에서 RNA 처리 등에 관여하며, 일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과도 관련이 있다.
FUS는 특정 조건에서 한곳에 모여 액체와 비슷한 작은 방울을 만든다. 방울 안에는 주변보다 훨씬 많은 단백질이 모여 있지만 분자들은 여전히 움직인다. 방울 안팎을 오가기도 하고, 방울끼리 합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단백질이 농축된 덩어리를 응축체라고 부른다.
단백질이 많이 모이면 서로 접촉할 기회도 늘어난다. 따라서 응축체는 단백질 분자들이 길게 결합한 섬유가 만들어지기 쉬운 장소로 여겨졌다. 실제로 2015년 연구에서는 FUS가 형성한 액체 방울이 시간이 지나 단단한 응집 상태로 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일부 ALS 관련 돌연변이는 그 변화를 앞당겼다.3
그러나 단백질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섬유가 가장 잘 자라는 곳은 아니었다.
연구진은 FUS 방울을 만든 뒤 이미 형성된 섬유 조각을 넣었다. 주변의 단백질이 달라붙어 섬유를 연장할 수 있도록 씨앗을 제공한 것이다.
섬유는 방울의 표면에서도 나타났지만, 주로 방울을 둘러싼 묽은 용액으로 뻗어나갔다. 방울이 없는 조건에서도 섬유는 성장했다.
방울 바깥에 단백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도가 낮을 뿐, 용액에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FUS 분자들이 존재한다. 섬유는 이 분자들을 받아들이며 길어진다.
섬유가 성장하면서 주변 용액 속 단백질을 소비하면 방울과 용액 사이의 농도 균형도 달라진다. 방울은 밀폐된 주머니가 아니므로, 그 안에 모여 있던 단백질이 바깥으로 풀려나와 새로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러면 방울의 크기도 줄어든다.
연구진은 방울과 용액 사이의 물질 교환을 고려한 물리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서는 단백질이 방울의 경계를 얼마나 쉽게 통과하는가에 따라 수축 양상이 달라졌다. 섬유가 성장하면서 주변 방울이 줄어드는 관찰 결과를 설명하는 물리적 경로였다.4

이 모델에서 액체 방울은 섬유의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는 저장고처럼 작용했다. 두 구조는 같은 재료를 공유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렇다면 시간이 더 흐르면 어떻게 될까. 방울이 오래 존재할수록 섬유도 더 많이 자랄 수 있을까?
방울이 굳으면 섬유가 덜 자란다
연구진은 이번에는 방울을 만든 뒤 기다리는 시간을 바꿨다. 방울이 형성된 지 1시간 뒤 섬유 씨앗을 넣은 경우와 24시간, 48시간 뒤에 넣은 경우를 비교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오래된 방울이 있는 시료일수록 섬유 성장이 줄었다.

신선한 방울이 있는 시료에서는 섬유가 활발하게 자라면서 방울이 수축했다. 반면 오래된 방울이 있는 시료에서는 섬유가 덜 자랐고, 남아 있는 방울도 많았다.
그동안 방울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연구진은 방울의 형광을 일시적으로 어둡게 만든 뒤 밝기가 회복되는 속도를 측정했다. 오래된 방울일수록 회복이 느렸다. 높은 농도의 소금을 가했을 때에도 오래된 방울은 쉽게 녹지 않았다.
이 결과는 방울이 노화하면서 분자들의 이동과 교환이 제한되는 방향으로 물성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러한 성질을 유리와 비슷한 상태로 설명했다. 단백질 응축체가 시간이 지나며 유리 같은 물성을 갖게 되는 현상은 이전 연구에서도 알려져 있었다.5
여기서 유리란 창문처럼 투명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분자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으면서도 서로의 위치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물질 상태를 가리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경로의 경쟁이 드러난다.
섬유가 자라려면 단백질 분자들이 움직여 섬유 끝에 달라붙어야 한다. 반면 방울이 유리처럼 노화하면 분자의 이동과 물질 교환이 어려워진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섬유 성장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석했다.
섬유는 움직이는 단백질을 받아들이며 자라고, 방울은 유리처럼 굳어지면서 그 움직임을 제한한다.

신선한 방울이 있는 시료에서는 섬유의 성장과 방울의 수축이 두드러졌다. 오래된 방울이 있는 시료에서는 방울이 더 많이 남았지만 섬유의 성장은 약해졌다. 연구진은 두 현상을 서로 경쟁하는 고체화 경로로 해석했다.
같은 단백질이라도 분자들이 길게 결합해 섬유를 만들 수 있고, 액체 방울에 모인 채 움직임이 느린 상태로 굳을 수도 있다. 이번 실험에서는 방울의 노화가 진행될수록 섬유의 성장이 불리해졌다.
같은 재료, 서로 다른 결말
FUS 방울에서 섬유가 만들어지는 현상은 이미 여러 차례 연구됐다.
2023년에는 액체 방울이 형성되기 어려울 만큼 단백질 농도가 낮은 용액에서도 FUS의 작은 섬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6 같은 해 다른 연구에서는 응축체의 고체화가 표면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진행하는 현상이 관찰됐다.7
2024년에는 FUS 단백질의 일부 구간으로 만든 방울을 장기간 관찰한 결과도 발표됐다. 방울 표면에는 단단한 껍질이 생겼고, 오랫동안 성숙한 시료에서는 섬유도 발견됐다. RNA를 넣으면 이러한 노화 과정이 억제됐다.8
2025년에는 FUS 응축체 내부의 미세한 영역들이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현상이 표면의 섬유 형성과 연결된다는 관찰도 나왔다.9
이 연구들을 함께 놓으면 단백질이 굳는 과정은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방울 내부와 표면, 주변 용액은 서로 다른 환경이다. 단백질의 구성과 주변 물질, 경과 시간에 따라서도 변화의 양상이 달라진다.
이번 연구는 그 가운데 섬유 성장과 응축체의 유리화가 경쟁하는 관계를 보여줬다. 두 상태는 같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함께 존재할 수 있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직접 바뀌는 과정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경쟁이 실제 신경세포 안에서 어떻게 벌어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세포에는 RNA와 다른 단백질, 여러 조절 과정이 존재한다. 시험관에서 관찰한 경쟁 관계가 ALS 환자의 신경세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단백질이 굳는다는 것은 하나의 결말이 아니다. 같은 단백질을 놓고 섬유로 자라는 길과 유리처럼 굳는 길이 경쟁하며, 그 결과 서로 다른 상태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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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탕의 결정화와 유리상 형성 설탕을 주성분으로 한 사탕의 구조는 수분 함량과 냉각 조건, 결정화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결정화를 억제한 단단한 사탕은 분자배열에 장거리 질서가 없는 유리상 물질이다. 이 비유는 질서 있는 결정 형성과 유리화의 경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설탕 결정과 단백질 섬유의 구조나 형성과정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근거: Institute of Physics, “Sweet glasses”; J. Peter Clark, “Crystallization Is Key in Confectionery Processes”, Food Technology, 2004.
2. 2026년 핵심 연구와 저자 기여 Liru Feng, Ryota Takaki, Iain Muntz, Lionel Ndamba, Martine Ruer-Gruß, Frank Jülicher, Louise Jawerth, “Fibres and glasses are competing material states in protein condensation,” Nature Physics, 온라인 출판 2026년 10월 20일. DOI: 10.1038/s41567-026-03415-z. 정식 출판본의 저자 기여도에 따르면 Feng과 Jawerth는 실험을 기획·지도했고, Feng이 실험을 수행했다. Ndamba와 Ruer-Gruß는 실험을 지원했다. Muntz·Feng·Takaki·Jawerth는 데이터 분석에 참여했고, Takaki·Jawerth·Jülicher가 이론 모델을 개발했다. 교신저자는 Jawerth다. 별도의 공동 제1저자 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연구기관에는 네덜란드 라이덴대,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학연구소, 막스플랑크 분자세포생물학·유전학연구소 등이 포함된다.
3. FUS 응축체 노화와 ALS 관련 돌연변이 Avinash Patel et al., “A Liquid-to-Solid Phase Transition of the ALS Protein FUS Accelerated by Disease Mutation,” Cell 162(5), 1066–1077 (2015). DOI: 10.1016/j.cell.2015.07.047. 시험관에서 재구성한 FUS 액체 방울이 시간이 지나 비정상적인 응집 상태로 변하고, 일부 환자 유래 돌연변이가 이 전환을 촉진한다는 결과다. 응집 상태로 변했다는 사실을 모든 방울이 아밀로이드 섬유로 직접 변했다는 뜻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4. 섬유 성장과 응축체 수축 Feng et al. (2026), Fig. 1–3 및 확장자료 1–2. 대표적인 섬유 성장 실험은 FUS 4.5μM, 섬유 씨앗 0.7μM, KCl 100mM 조건에서 진행됐다. 응축체가 없는 유리 구슬 실험은 FUS 4.5μM, KCl 200mM 조건이므로 두 실험의 성장 속도를 동일 조건으로 직접 비교하지 않는다. 섬유가 형성되지 않은 12시간 대조군에서도 응축체의 총부피는 소폭 감소했다. 연구진은 섬유 성장과 연동된 수축을 물질 교환과 계면 전도성을 고려한 모델로 설명했다. 방울에서 섬유로 이동하는 모든 단백질의 경로와 기여 비율을 직접 추적한 실험은 아니다. Feng et al., original paper.
5. 응축체의 유리상 노화와 측정 Louise Jawerth et al., “Protein condensates as aging Maxwell fluids,” Science 370(6522), 1317–1323 (2020). DOI: 10.1126/science.aaw4951. 2020년 연구는 단백질 응축체의 시간에 따른 점탄성 변화를 분석하고, 노화에 따라 점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고했다. Feng et al. (2026), Fig. 4 및 확장자료 3–4에서는 FUS 15μM, KCl 100mM 조건에서 방울 형성 후 1·24·48시간에 각각 700nM의 섬유 씨앗을 넣어 성장 차이를 조사했다. 응축체 전체를 표백하는 형광회복실험은 내부 확산과 외부 용액과의 물질 교환에 함께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은 형광 회복 감소와 1M KCl 처리에 대한 용해 저항을 유리상 노화의 근거로 해석했다. 섬유 씨앗을 넣지 않은 별도의 대조군에서는 7일과 32일 관찰에서 뚜렷한 섬유 형성이 검출되지 않았다. 32일 관찰에서 응축체 내부의 염색 신호는 소폭 증가했으므로 응축체에 아무런 구조적 변화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6. 낮은 농도에서의 FUS 섬유 형성 Emilie Bertrand, Clément Demongin et al., “FUS fibrillation occurs through a nucleation-based process below the critical concentration required for liquid–liquid phase separation,” Scientific Reports 13, 7772 (2023). DOI: 10.1038/s41598-023-34558-1. Bertrand와 Demongin은 공동 제1저자다. FUS 액체 방울 형성에 필요한 임계농도보다 낮은 조건에서도 섬유 형성이 가능하다는 결과로, 묽은 용액에서 섬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2026년 최초 발견이 아니다.
7. 응축체 표면에서 시작하는 고체화 Yi Shen et al., “The liquid-to-solid transition of FUS is promoted by the condensate surfac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0(33), e2301366120 (2023). DOI: 10.1073/pnas.2301366120. 응축체 표면이 고체화를 촉진하고, 표면에서 시작된 변화가 내부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결과다. 표면 고체화와 주변 묽은 용액에서의 섬유 성장은 서로 구별해 해석해야 한다.
8. FUS 방울의 단단한 표면 껍질 Leonidas Emmanouilidis, Ettore Bartalucci et al., “A solid beta-sheet structure is formed at the surface of FUS droplets during aging,” Nature Chemical Biology 20, 1044–1052 (2024). DOI: 10.1038/s41589-024-01573-w. Emmanouilidis와 Bartalucci는 공동 제1저자다. FUS의 N말단 1~267번 아미노산 절편으로 만든 응축체를 아가로스 겔에서 장기간 관찰했다. 응축체 표면에 베타병풍 구조를 가진 단단한 껍질이 형성됐고, 장기 성숙 시료에서는 섬유가 확인됐다. RNA는 노화를 억제하거나 이미 형성된 표면 구조를 변화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이 결과와 2026년 연구의 차이를 설명할 때 단백질 구성, 실험조건, 관찰기간을 구분해야 한다. 어느 한 조건이 결과 차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확정하지 않는다.
9. 응축체 내부 나노영역과 표면 섬유화 Guoming Gao, Emily R. Sumrall, Nils G. Walter, “Nanoscale domains govern local diffusion and ageing within fused-in-sarcoma condensates,” Nature Nanotechnology 21, 249–258 (2026년 권호). DOI: 10.1038/s41565-025-02077-x. 온라인 최초 출판일은 2025년 11월 14일이다. Gao와 Sumrall은 공동 제1저자다. 연구진은 응축체 내부에서 RNA와 단백질의 움직임이 서로 다른 나노미터 규모의 영역에 제한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응축체가 노화하면서 이 영역들의 배치가 변하고, 그 변화가 표면의 FUS 섬유 형성과 연결됨을 보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