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미국 오하이오주의 전력회사 AEP Ohio가 데이터센터의 전력 신청 현황을 공개했다.
처음 개발사들이 필요하다며 문의한 전력은 3만 메가와트(MW)가 넘었다. 그중 전력망 연결에 필요한 조사를 정식으로 신청하고 비용을 낸 규모는 약 1만3000MW였다. 새 요금제에 따라 장기계약을 맺은 규모는 5642MW였다. MW는 한순간에 공급하거나 사용하는 전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1
그렇다면 계약에 이르지 못한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까?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다. AEP Ohio의 발표에는 어느 사업이 여러 곳에 중복 신청했고, 어떤 사업이 자금이나 공급 일정 때문에 계약을 포기했는지에 관한 상세 내역이 없다. 새 요금제가 시행되기 전에 체결한 별도 계약도 1만2219MW에 이른다. 사업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줄어든 전력 신청을 모두 거짓 수요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력회사는 이런 신청을 바탕으로 시설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곳에 변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이 취소되면 데이터센터를 위해 마련한 시설이 쓰이지 않을 수 있다. 투자를 미뤘다가 실제로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필요한 전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전력회사는 무엇을 믿고 시설을 지어야 할까?
유령 수요
데이터센터 개발사는 건물을 짓기 전에 전력 공급 가능성부터 확인한다. 언제부터 얼마나 많은 전기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야 부지와 건설 규모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발사가 여러 지역에 동시에 공급 가능성을 문의할 수도 있다. 고객과 투자금이 확보되지 않았어도 큰 용량을 미리 신청할 수 있다. 나중에 한 지역을 선택하면 다른 신청은 필요 없어지고, 사업이 취소되면 전기를 전혀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전력회사가 이런 요청을 모두 실현될 수요로 계산하면 필요한 전력 규모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 업계와 언론은 이처럼 실제 사용으로 이어질지 불확실한 신청을 '유령 전력수요(ghost demand)'라고 부른다. 2
모두 거짓 신청인 것은 아니다. 여러 후보지를 비교하는 정상적인 사업도 있고, 자금이나 인허가 문제로 중단된 사업도 있다. 전력 공급 기회만 선점하려는 신청과는 구별해야 한다.
전력회사는 개발사가 실제로 지을 부지를 확보했는지,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 계획을 철회하면 어떤 비용을 책임질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예약의 대가
오하이오주는 데이터센터 개발사들이 부담 없이 대규모 전력을 신청하고 철회하지 못하도록 별도 요금제를 도입했다.
2025년 주 전력요금 규제기관이 승인한 제도에 따르면, AEP Ohio의 대형 데이터센터 고객은 부지를 소유하거나 독점적으로 사용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전력회사와 건설비 부담을 정하고 장기계약도 맺어야 한다. 사업을 취소하거나 사용 개시가 크게 늦어지면 이미 들어간 특정 공사비를 개발사가 물어내야 할 수 있다. 3
전기를 쓰기 시작한 뒤에도 계약한 용량보다 적게 사용하면 일정 수준의 요금을 내야 한다. 전력회사가 그만큼의 전기를 공급할 시설을 준비한 비용을 회수하도록 한 것이다.
계약은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체 발전기로 전력을 생산하는 데이터센터가 그만큼을 전력회사의 공급 한도에서 빼기로 계약했다고 하자. 발전기가 고장 났다고 부족해진 전기를 모두 전력망에서 가져오면 약정한 한도를 넘길 수 있다. AEP Ohio는 이 방식을 선택한 고객에게 발전기가 멈추면 전기 사용을 즉시 줄일 수 있는 장치를 갖추도록 요구한다. 3
사업을 실제로 추진할지를 확인하려고 맺은 계약이, 가동 뒤 전력 사용 한도까지 정하는 것이다.
오하이오의 소비자보호 기관은 데이터센터 사업이 무산됐을 때 기존 전기 사용자들이 공사비를 떠안는 일을 막기 위해 이런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데이터센터 업계는 일부 조건이 지나치다며 법적 다툼을 벌였다. 4
보증금의 한계
같은 AEP 기업집단의 텍사스 자회사 AEP Texas는 2026년 7월 약 20억 달러의 금융보증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관련 예비 전력수요는 약 40기가와트(GW)였다. 1GW는 1000MW다. 보증에는 현금 외에도 은행이나 다른 기업이 일정한 조건에서 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5
보증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개발사들이 사업에 재정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40GW를 실제로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에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센터가 몰린 지역은 신청한 전기를 모두 보내려면 새 시설을 지어야 할 수 있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기관 ERCOT은 대규모 신청을 함께 검토해 실제 공급 가능한 용량을 판단한다. AEP도 공급 규모와 시기, 공사비 부담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5
텍사스가 2026년 10월 8일부터 시행한 규칙도 자금 능력과 실제 공급 가능성을 따로 다룬다. 해당 대형 사업자가 금융담보를 내고 연결 검토를 받았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 전혀 없다면, 정해진 조건에 따라 철회하고 발생 비용을 뺀 담보 잔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용량을 배정받았더라도 사용을 계속 미루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용 개시 일정이 24개월 이상 늦어지면 ERCOT은 앞으로 다른 사업을 검토하면서 사용하지 않은 용량을 다시 배정할 수 있다. 자동으로 공급권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6
AEP Texas가 7월 확보한 보증은 이 규칙이 시행되기 전에 이뤄진 약정이다. 두 제도를 같은 계약의 연속된 단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개발사가 돈을 마련할 능력이 있어도 송전망에 여유가 없으면 원하는 만큼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 실제로 지어질 데이터센터라도 언제부터 얼마나 전기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라진 3800MW
데이터센터가 실제로 가동된 뒤에도 전력망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생길 수 있다.
2026년 7월 22일 미국 북버지니아에서 송전설비 고장이 발생했다. 주변 데이터센터들은 외부 전력망 대신 자체 예비발전기로 전기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와 중서부 일부의 전력망을 운영하는 PJM에 따르면 약 3800MW의 전력수요가 갑자기 전력망에서 빠져나갔다. 7
데이터센터가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전기를 공급받는 곳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전력망에서는 발전량과 소비량이 갑자기 어긋났다.
큰 고객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전기 사용은 급감하지만 발전소가 즉시 출력을 낮추기는 어렵다. 전압과 주파수가 크게 흔들리고, 설비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작동하면 또 다른 시설까지 전력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운영자가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추가 고장이 이어지고 광범위한 정전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북버지니아에서는 첫 번째 데이터센터들이 빠져나간 뒤 전압이 상승했다. 여기에 반응한 다른 데이터센터 약 1100MW도 예비발전기로 전환했다. 이 수치는 총 3800MW에 포함된다. 첫 번째 이탈이 추가 이탈을 부른 것이다. 7
PJM 관제센터는 발전소 출력을 낮추고 전압을 조절했다. 발전량과 소비량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운영 지표가 약 9분 안에 정상 범위로 돌아왔고, 대규모 정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PJM도 계통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첫 이탈이 다음 이탈을 불러왔다는 사실은 위험을 보여준다. 보호장치들이 연쇄적으로 작동해도 전력망이 감당할 수 있도록 대형 데이터센터의 연결 기준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논의가 뒤따랐다.
유령 수요가 아직 쓰지도 않을 전기를 미리 신청하는 문제라면, 북버지니아에서는 이미 쓰고 있던 전기가 갑자기 전력망에서 빠져나갔다. 미래 수요를 잘못 예상하면 투자비를 낭비할 수 있다. 이미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가 한꺼번에 전력망에서 이탈하면 정전 위험이 커진다.

버틸 때와 줄일 때
북버지니아의 데이터센터들은 자체 설비를 보호하려고 예비발전기로 전환했다. 하지만 많은 시설이 동시에 전력망을 떠나면 전체 계통은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전력망 운영기관들이 순간적인 전압·주파수 변동을 일정 범위에서 견디도록 요구하는 이유다. 텍사스 ERCOT도 2026년 8월 관련 기준을 시행했다. 8
반대로 공급할 전기가 정말 부족할 때는 대형 고객에게 사용량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수도 있다. 병원과 가정처럼 피해가 큰 곳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어느 시설부터 줄일지 미리 정해야 한다.
PJM은 신규 대형 고객의 정보를 등록하고, 비상시 일부 고객의 전력 사용을 우선 강제로 줄이는 제도를 제안했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2026년 10월 9일 50MW 이상 대형 전력사용자의 정의와 등록제도는 수용했지만, 신규 고객을 우선 강제로 차단하는 구상의 주요 부분은 반려했다. 신규 고객만 다르게 취급할 근거가 충분한지, 고객의 전력 차단 순서를 정하는 데 주정부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는지가 쟁점이었다. 규제기관은 수용한 등록제도에 관한 조문도 반려된 내용과 분리해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 9
누구를 먼저 차단할지뿐 아니라, 필요한 발전소를 미리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전력시장에서는 앞으로 전기가 부족할 때를 대비해 발전소의 공급능력을 확보한다. 일부 고객에게 보상을 지급하고 비상시에 전기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받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강제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규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그 계산에서 제외하면 문제가 생긴다.
FERC의 David Rosner 위원은 별도 의견에서 그런 방식이 실제 공급 부족을 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상시에 고객을 강제로 차단해야 할 만큼 전기가 부족한데도 시장에서는 발전설비가 충분한 것처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발전소를 더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가격도 낮게 형성될 수 있다. 10
이는 시행되지 않은 제도에 대한 분석이지만, 장부에서 전력수요를 제외한다고 실제로 필요한 전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중요하다. 전력 부족을 숨기는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면 발전설비 확충이 늦어질 수 있다.
전압이 잠깐 흔들릴 때는 대형 데이터센터들이 한꺼번에 전력망에서 빠져나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 반대로 공급할 전기가 부족하면 계획에 따라 사용량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두 상황에 맞는 규칙이 모두 필요하다.

누가 부담하나
전력회사가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려고 송전선로나 변전소를 확충했는데 개발사가 사업을 취소했다고 하자.
전력회사는 공사비를 먼저 지출했을 수 있다. 계약에 따라 개발사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만, 회수할 수 있는 금액과 항목은 계약마다 다르다. 오하이오 요금제는 사업 취소나 장기 지연으로 발생한 특정 공사비를 개발사가 부담하도록 한다. 3
개발사에게 청구하지 못한 비용은 전력회사의 손실이 될 수 있다. 규제기관이 그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회수하도록 허용한다면 기존 가정과 기업에도 부담이 돌아갈 수 있다. 오하이오 소비자보호 기관은 이런 비용 전가를 막기 위해 장기계약과 최소요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4
텍사스의 금융담보 역시 사업이 무산됐을 때의 위험을 줄이는 장치지만 송전망 투자비 전체를 정산하는 제도는 아니다. 규제기관은 비용 회수와 담보금의 요금 처리 문제를 별도 절차에서 다루기로 했다. 6
공개된 자료만으로 기존 고객에게 실제로 얼마가 전가됐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계약과 요금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개발사의 투자 판단과 일반 소비자의 전기요금이 달라진다.
전력망이 믿을 수 있는 약속은 신청서에 적힌 거대한 숫자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전기를 쓰고 그 약속이 어긋났을 때 누가 책임질지까지 정해진 계획이다.
각주
1. AEP Ohio, 2026-02-13 데이터센터 수요: 최초 30GW 이상 관심표명, 13,022.7MW 유료 검토, 신규 계약 5,642MW, 이전 계약 12,219MW를 서로 다른 단계·시점으로 구분.
2. Wall Street Journal, 2026-10-14 및 Reuters, 2026-09-01: 유령 수요·중복 신청·금융보증의 선행 보도. 기존 보도를 CAUSIFOLD 독점 발견으로 표현하지 않음.
3. AEP Ohio의 데이터센터 요금제 및 PUCO 승인 안내: 부지 권리·계약기간·공사비 상환·월 최소청구수요·자체 발전설비 고장에 따른 즉시 감축 의무. 감축 의무는 해당 계약방식을 선택한 고객에 한정.
4. Ohio Consumers' Counsel 비용보호 사건: 기존 고객 비용전가 방지 취지 및 업계의 항소. 실제 비용절감액은 미확인.
5. AEP 2026Q2 SEC 10-Q: AEP Texas 약 40GW 예비수요 관련 7월 약 20억달러 금융보증(현금·기업보증·신용장 혼합), 실제 배정·통전시점·비용책임은 별도.
6. Texas Register 16 TAC §25.194, 2026-10-08 발효: 담보, 용량배정, 조건부 환급, 사용개시 일정 24개월 지연 때 향후 재배분 가능. 광역 송전망 투자비 회수는 Project 58000 등 별도 절차.
7. PJM, 2026-08-11 공식 사건 검토: 7월 22일 실제 부하 약 3,800MW 계통 이탈, 그중 추가 약 1,099MW, 관제 운영 지표 9분 내 정상 범위. 9분은 정전 복구시간이 아님. 실제 대규모 정전 없음.
8. ERCOT NOGRR282: 2026-08-01 대형 전산부하의 전압·주파수 변동 견딤 기준. PJM과 다른 전력시장·규정.
9. FERC ER26-3515-000, 2026-10-09 주문 공식 서지, Reuters 2026-10-12, Utility Dive 2026-10-12: 50MW 대형부하 정의·등록제도 수용, 강제 우선감축 및 관련 특례 반려, 규제 관할과 비차별 논점. FERC 주문 DOCX 원문 직접 판독 미완료. 원문 조문·Appendix의 처분 및 준수기한은 최종 동결 전 대조 필요.
10. FERC Rosner 위원 공식 동의의견: 강제차단을 자발적 수요반응보다 우선하면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과, 차단대상 수요를 용량시장 수요곡선에서 제외할 때의 가격신호 왜곡 위험을 분석. 위원회 전체의 공식 다수 의견과 구별.
